멀리 떠난다고 여행이 아니다. 때로는 가까운 곳에서 뜻밖의 아름다움과 만나는 것이 진짜 여행일 수도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새로 호수를 조성하거나 기존 호수를 다듬어 멋진 산책길을 만든 곳이 많다. 팬데믹 시대, 사람 많은 곳이 부담스럽다면 호수길을 걸으며 호젓한 나만의 여행을 즐겨보자.
바닥분수와 공연장, 전망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원천호수는 주말이면 사람들로 붐빈다. 조금 떨어진 신대호수에선 더 여유 있게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광교호수공원 가족캠핑장에서 숙박도 할 수 있다.
호수에서 길목 하나 넘어서면 백사장이 드넓은 화진포해수욕장이다. 이승만별장과 화진포의성(김일성별장)이 이곳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짐작하게 해준다. 화진포 남쪽에 자리한 송지호도 고즈넉한 호수 풍경이 매력적이다. 호수를 따라 송지호 산소길이 조성돼 걷기 좋다. 호수 건너편 송지호해수욕장은 최근 떠오르고 있는 서핑 명소다. 오토캠핑장이 있어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캠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송지호에서 내려오면 화진포, 송지호와 함께 고성8경에 드는 천학정과 청간정을 차례로 만난다. 천학정은 기암괴석과 해안 절벽 위에 있다. 청간정(강원유형문화재 32호)은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꼽았던 곳이다.
느린호수길은 수문에서 예당호 출렁다리를 거쳐 중앙생태공원까지 이어진다. 호수에 사는 동식물을 관찰하며 느릿느릿 걷기에 제격이다. 특히 호수에 잠겨 사는 나무 사이를 지날 때는 열대지방의 맹그로브숲을 만나는 것 같아 이색적이다. 느린호수길을 걷다 보면 어죽을 파는 식당이 눈에 띈다. 어죽은 예당호에 사는 붕어와 동자개(빠가사리), 메기 등으로 끓여 국물 맛이 깊다. 토종 민물고기로 어죽을 만드는 곳도 드물지만 맛의 깊이가 남달라 꼭 한번 먹어볼 만하다.
예당호 옆 봉수산 꼭대기에는 예산 임존성(사적 제90호)이 있다. 백제부흥군이 나당연합군에 맞서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곳이다. 임존성에 서면 드넓은 예당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봉수산 중턱에는 자연휴양림과 수목원이 있다. 예당호를 바라보며 하룻밤 묵고, 수목원에서 숲길을 산책하기 좋다. 예산황새공원은 아이들과 함께 귀한 황새(천연기념물 제199호)를 만날 수 있는 자연 학습지다.
안동호 끝자락에는 국내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인 월영교가 있다. 400여 년 전 고성 이씨 문중 이응태의 묘를 이장하던 도중 관에서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와 배냇저고리, 젊은 나이에 병사한 남편에게 전하는 원이 엄마가 쓴 사랑의 편지가 나왔다. 그 애절한 사랑을 기려 월영교의 모양도 미투리를 형상화했다. 호수 위 월영교의 반영과 일몰, 야경까지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다. 월영교 주변에 다양한 벽화와 트릭아트 등으로 꾸민 신세동벽화마을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유명한 만휴정(경북문화재자료 제173호)도 둘러볼 만하다.
7월은 위양못 둘레길이 가장 푸르른 시기이기도 하다. 둘레길은 숲길의 고유한 아름다움만 두고 봐도 여느 숲에 뒤지지 않는다. 하물며 위양못이 어우러진 길이다. 제16회 아름다운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우수상)을 받은 숲의 진가를 실감한다. 완재정도 위양못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1900년 학산 권삼변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안동 권씨 문중의 재실로, 위양못의 섬에 해당한다. 완재정 담장 너머로 바라보는 위양못의 풍경 역시 이채롭다.
상부 승강장이 해발 1020m에 있는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는 밀양의 산세를 뽐낸다. 천황산 하늘정원 전망대까지 다녀올 만하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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